‘나가사키와 아마쿠사 지방의 잠복 크리스천 관련 유산’은 현재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잠정 리스트에 게재되었고, 세계유산 등록을 위해서 다양한 수속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가사키와 아마쿠사 지방의 잠복 크리스천 관련 유산’에 얽힌 역사를 더듬어 왔지만, 450년 간에 걸친 격동의 역사는 결코 종교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며 이 지역의 잠재력과 가능성까지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2014년 1월 15일, 세계의 크리스트교 카톨릭 신도 약 12억 명의 정점에 있는 프란치스코 로마 교황이 바티칸의 성피에트로 광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일본의 크리스트교도는 17세기를 시작으로 엄혹한 박해를 받았다. 사제는 추방되어 없었지만 크리스트교도는 잠복하면서 신앙과 기도를 지키고, 아이들이 태어나면 부모가 세례를 했다. 세례 덕분에 살아 남았다. 이 일로부터 우리들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성직자 부재 속에서 약 250년간, 나가사키의 잠복 크리스천들이 스스로 세례를 내려주고, 신앙을 지켜온 것을 로마교황은 ‘모범’이라고 칭송한 것입니다.
교황이 언급한 나가사키 우라카미의 잠복 크리스천이 오오우라 천주당을 찾아가 프티장 신부와 만난 ‘신도발견’으로부터 거의 150년, 지금 새롭게 이 종교 역사상의 기적이 재검토 되고 주목 받고 있습니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잠정 리스트에 게재되어 있는 ‘나가사키와 아마쿠사 지방의 잠복 크리스천 관련 유산’은, 성곽터와 교회 등 12개의 자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작은 교회 또는 석단이 파괴되어 건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성터 등은 역사를 알지 못하면 그냥 간과될 만할 것들 입니다.
우리들이 평소에 ‘세계유산’이라고 듣는 순간 떠오르는 유럽의 장엄한 교회나 중국의 대자연 등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좀 초라하게 느껴질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게 이 교회가 세워졌는가? 또한 왜 이렇게 남겨졌는가를 알면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더듬어 온 격동의 역사로부터는, 삶에 있어서 신앙과 종교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또한 통치 지배와 종교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등 많은 것들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250년 간에 걸친 잠복 크리스천의 지혜와 방편, 그리고 인내는 곤란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힌트를 보여 줍니다.
더구나 이 450년 간의 역사로부터는 시마바라, 나가사키, 고토, 아마쿠사 지역이 가진 유전자를 또한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해안선이 길어 천연의 양항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이들 지역은 크리스트교의 전래와 번영의 시대에는 유럽에 연결되는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금교의 시대에는 그 복잡한 해안이 다른 지역과의 격리를 가져온 것입니다.
접속과 격리. 언뜻 보면 상반된 듯 보이는 이 두 가지 성격이 이곳에서는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문화와, 지속적으로 계승하여 나가는 문화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여 이 지역의 매력을 형성하여 왔습니다.
대항해시대에 선교사들이 왕래했던 크리스트교 포교거점, 포르투갈의 리스본, 인도의 고아, 중국의 마카오 등에서는 이미 많은 관련 유산이 세계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의 최후의 도달점이었던 이 지역이 세계유산에 등록된다면 서쪽에서 동쪽에 이르기까지의 항해 루트가 이어지고 세계의 종교사 속에서 이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중요성과 의의가 새롭게 재검토 되게 되겠지요.
현재,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다양한 나라를 왕래 하게 되었습니다. 세계 속에 존재하는 많은 문화들 속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가야 할 것인가라는 것은 전인류의 큰 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장래에 나아가야만 하는 길을 결정해야 할 때, 역사를 참고하게 됩니다. 무엇이 가장 좋은 선택인가? 그리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의 시대를 생각함에 있어서 ‘나가사키와 아마쿠사 지방의 잠복 크리스천 관련 유산’이 이야기하는 스토리는 너무도 많은 힌트를 우리들에게 전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