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시마바라 반도에서 영화를 자랑하던 아리마의 땅. 전국시대에 독자적으로 유럽과 교류를 진행하고, 로마교황에의 알현까지 이루어내었던 나라가, 3만 7천명의 비극, ‘시마바라의 난’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왜였을까... 총12회로 그 발자취를 더듬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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